당뇨 진단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탄수화물 끊기입니다. 그런데 탄수화물을 완전히 끊으면 오히려 혈당이 더 불안정해진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직접 식단 공부를 하면서야 비로소 이게 단순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탄수화물, 끊는 게 답이 아닌 이유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면서 선천성 당뇨가 있는 회원님을 오랫동안 개인 레슨으로 케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회원님이 가장 힘들어하셨던 게 바로 탄수화물 문제였습니다. 당 수치가 걱정돼서 탄수화물을 아예 입에 대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한꺼번에 쏟아붓듯 드시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제가 직접 지켜보니 이게 오히려 혈당을 더 크게 요동치게 만드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회원님께 드렸던 조언의 핵심은 복합 탄수화물을 적정량 챙겨 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복합 탄수화물이란 현미, 귀리, 잡곡처럼 당 분자가 여러 개 연결된 구조로 이루어진 탄수화물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소화 흡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혈당 스파이크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혈당 스파이크란 식후에 혈당이 급격히 치솟았다가 빠르게 떨어지는 패턴을 말하는데, 이게 반복되면 췌장에 부담이 쌓이고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집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세포가 인슐린 신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열쇠(인슐린)는 있는데 자물쇠(세포)가 말을 안 듣는 상황입니다. 이 저항성이 높아질수록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혈당이 더 크게 오르게 됩니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식단을 공부하면서 저도 이 사실에 처음엔 꽤 당황했습니다. 탄수화물은 다이어트할 때 무조건 줄여야 하는 영양소라고 굳게 믿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책과 강의를 찾아보면서 탄수화물은 우리 몸의 주된 에너지원으로, 완전히 제거하면 오히려 단백질이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근육이 손실되는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근육량을 늘리고 체지방을 줄이는 체성분 개선이 목표라면 적정량의 탄수화물 섭취는 필수였습니다.
당뇨 환자에게도 원리는 비슷합니다. 탄수화물을 너무 줄이면 우리 몸이 부족한 포도당을 얻기 위해 간에서 포도당신생합성 과정을 활성화시킵니다. 포도당신생합성이란 탄수화물이 아닌 단백질이나 지방을 분해해서 포도당을 새로 만들어내는 대사 과정입니다. 결국 탄수화물을 굶어도 혈당은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회원님이 복합 탄수화물을 규칙적으로 드시기 시작하자 혈당 수치가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참다 참다 폭식하는 패턴이 사라졌고, 운동 효율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제가 직접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당뇨 식단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백미 한 공기 대신 잡곡밥 기준 반 공기로 줄이되, 단백질과 良질의 지방을 충분히 보충한다
- 빵, 면류처럼 정제된 단순당이 아닌 현미, 귀리 등 복합 탄수화물로 탄수화물 공급원을 바꾼다
- 인슐린 저항성이 높은 경우 공복 시간을 길게 유지하되, 기력이 부족하다면 소량의 간식을 규칙적으로 챙긴다
한국인의 당뇨 환자 중 비만이 아님에도 혈당이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2형 당뇨 환자는 서양인에 비해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취약한 경향이 있으며, 비만보다 다른 요인으로 혈당이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분석됩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그래서 "살 빼면 낫는다"는 공식이 한국인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스트레스, 혈당을 올리는 또 다른 원인
식단도 잘 관리하고, 체중도 정상 범위인데 혈당이 올라가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상 이건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 신경이 항진됩니다. 여기서 교감 신경 항진이란 우리 몸이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각성 상태를 높이는 반응입니다. 이 과정에서 혈당이 실제로 올라갑니다. 가벼운 스트레스는 혈당이 일시적으로 올랐다가 금방 회복되지만, 만성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내장 기관에 누적 손상을 주고 혈당이 높은 채로 내려오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저도 다이어트를 병행하면서 과도한 식단 제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에 체지방은 줄었어도 몸의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나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호르몬 균형이 흔들리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수면이 나빠지면 야식 욕구가 강해지고, 결국 운동도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당뇨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혈당 수치를 재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자책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아예 안받을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당뇨병은 당뇨약만으로 좋아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생활 습관에서의 작은 변화와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혈당 관리가 잘 될 수도 있고, 그저 스트레스만 받다가 악순환의 반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운동, 혈당 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방법
운동에 대해서도 한 가지 짚고 싶습니다. 운동 관리를 열심히 해도 혈당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가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숨이 차고 땀이 날 정도의 유산소 운동은 혈당을 직접 낮추는 효과가 있고, 꾸준한 근력 운동은 근육량을 늘려 혈당을 소모하는 능력 자체를 키워줍니다. 특히 대퇴사두근처럼 하체 대근육을 쓰는 스쿼트 운동은 근육이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을 높여 혈당 조절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다만 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유지하는 당뇨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당화혈색소(HbA1c) 수치가 유의미하게 낮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여기서 당화혈색소란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로, 단기 혈당 수치보다 당뇨 관리 상태를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덜 흔들리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과, 스트레스가 혈당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관리에 반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 경험상 이 인식의 차이가 장기적인 혈당 관리의 결과를 꽤 크게 바꿉니다.
당뇨는 원인이 하나가 아닙니다. 비만에서 온 경우도 있고,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도 있고, 기력 저하나 특정 장기의 기능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습니다. 내 혈당이 왜 오르고 있는지 원인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관리의 출발점입니다. 무조건 덜 먹고, 무조건 더 움직이는 방향이 아니라 본인의 상태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전문 의료진과 꼭 상담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