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다가 부산으로 내려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겨울에 서울 올라갔더니 온몸이 돼지국밥을 원하는데 주변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그 허탈감이요. 저도 그랬습니다. 2025년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국밥집 여섯 곳, 부산 세 곳에 서울 세 곳을 직접 다 먹어보고 나서야 그 갈증이 좀 해소됐습니다.

빕 구르망, 미쉐린이 잘 어울리는 돼지국밥
솔직히 처음엔 미쉐린이랑 국밥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특히 빕 구르망(Bib Gourmand)이라는 등급은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뛰어난 맛을 제공하는 식당에 주어지는 등급입니다. 쉽게 말해 가성비 맛집에 주는 공식 인증인데, 그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국밥이 딱 맞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부산에 대학교 다닐 때부터 돼지국밥은 저에게 소울푸드였습니다. 학교 근처 용호동에 합천 국밥집이 있었는데, 몸이 처지거나 뭔가 기력 보충이 필요하다 싶으면 친구들이랑 무조건 거기 갔습니다. 특유의 고기 토렴(toryeom) 방식으로 잡내를 잡는 집인데, 토렴이란 뚝배기에 담긴 밥 위로 뜨거운 육수를 여러 번 부었다 따라내기를 반복해 재료와 국물이 고루 어우러지게 하는 전통 조리법입니다. 그냥 밥 말아서 끓이는 게 아니라 육수와 재료가 서로 스며드는 과정이 따로 있다는 거죠. 합천 국밥은 그 풍미가 진하게 살아 있는 집이었습니다.
졸업하고 광안리 근처로 이사 온 뒤로는 수변최고돼지국밥을 자주 갑니다. 수변공원 쪽에 밤낮 상관없이 웨이팅이 길게 늘어선 집이 있길래 처음엔 도대체 뭔 집이지 싶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에 남편이랑 야식으로 찾아갔다가 항정살이 들어간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서 단골이 됐습니다. 국물이 깔끔하면서도 고기 양이 넉넉해서, 그 이후로는 야식으로 국밥이 먹고 싶을 때마다 찾는 곳이 됐습니다.
부산 돼지국밥, 어떻게 다를까
이번에 미쉐린 국밥 투어를 하면서 부산 세 곳을 다 돌아봤는데, 각 집마다 분위기와 맛의 결이 달랐습니다.
- 정직한: 신평역 6번 출구 바로 앞. 수상 경력이 많은 부산식 돼지국밥 전문점으로, 2011년 개업 이래 매일 직접 육수를 끓입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비해 가격이 부담 없고, 돼지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 수준입니다.
- 안목: 웨이팅이 48팀까지 늘어설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기존 돼지국밥과 달리 간이 처음부터 딱 맞게 나와 새우젓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고, 키오스크 주문 방식으로 회전도 빠릅니다. 외국인 방문객이 많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합천 국밥(동래구 용호동): 제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있던 바로 그 집입니다. 분위기는 전형적인 동네 국밥집인데, 부추를 넣는 순간 향긋함과 감칠맛이 확 올라옵니다. 소주 한 잔이랑 같이 먹으면 극락이 따로 없습니다.
세 곳 모두 서비스 흐름이 매끄럽고 음식 제공이 빠르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미쉐린 식당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인데, 주문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스템이 군더더기 없이 돌아갑니다. 식당 인테리어도 세련된 국밥집 느낌에다가 국밥집 특유의 친근한 느낌도 가지고 있어서 국밥을 먹는 내내 마음도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다만 웨이팅이 길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웨이팅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울 미쉐린 국밥과 비교, 부산과 무엇이 다른가
제가 직접 먹어보고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서울 미쉐린 국밥의 간이었습니다. 부산에서도 미쉐린 집들이 일반 국밥집에 비해 간이 약한 편이라고 느꼈는데, 서울에 올라오니 그보다 한 단계 더 담백한 수준이었습니다. 처음 한 숟갈에 "이게 국밥 맞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광화문 국밥은 흑돼지 살코기로 낸 육수에 부추가 넉넉히 올라오는 방식입니다. 원가 대비 맛 만족도를 뜻하는 코스트 퍼포먼스(cost performance) 기준으로 보면 한 그릇 11,000원에 미쉐린 인증이라는 건 분명 경쟁력 있는 가격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처럼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어 나오는 칼칼한 국밥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첫 번째 그릇이 낯설 수 있습니다. 새우젓과 후추를 한꺼번에 쏟아붓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2019년부터 연속으로 미쉐린 선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집만의 분명한 팬층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안국역 근처의 아남은 서울 국밥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양고추와 케일로 만든 향미유(香味油)를 육수에 어우러지게 하는데, 향미유란 향이 좋은 채소나 재료를 기름에 우려낸 것으로 육수에 깊이와 향을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생소한 조합인데 먹어보면 짭조름한 간이 생각보다 딱 맞아서 놀랐습니다. 스페인산 돼지 등갈비와 통목살을 사용한다는 점도 일반 국밥집과 확실히 다릅니다. 소곡주까지 곁들이니까 이건 그냥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코스를 즐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옥동식은 지리산 순종 흑돼지 살을 고아 만든 백탕(白湯) 형태의 국밥입니다. 백탕이란 재료를 장시간 고아 뽀얗게 우러난 국물 형태를 말하며, 사골 국물처럼 진하면서도 색이 밝고 맑은 게 특징입니다. 먹는 내내 아무도 말을 안 하게 되는 집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국밥을 먹는 것 같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조용한 분위기에 담백한 육수가 맞물리면서 집중해서 먹게 되더라고요. 다만 여기도 감칠맛보다는 꽃소금 간 위주라 미원 같은 인공 조미료에 익숙한 입맛이라면 뭔가 아쉬운 느낌이 남을 수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선정 기준에는 식재료의 질, 조리 기술, 맛의 일관성, 가격 대비 가치 등이 포함됩니다(출처: 미쉐린 가이드 공식 사이트). 이 기준으로 보면 서울 국밥집들이 왜 선정됐는지 이해가 됩니다. 재료 품질과 조리 기술은 분명히 수준급입니다. 다만 국밥을 매운 양념에 부추 잔뜩 넣고 소주와 함께 마시는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서울 미쉐린 국밥은 처음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내 외식 산업 통계에 따르면 국밥류 전문점의 매출은 최근 5년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서울 지역에서 부산식 돼지국밥을 표방한 식당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돼지국밥을 찾기 어려워서 겨울마다 순대국밥으로 때웠던 기억이 있는데, 그 사이에 서울 국밥 씬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결국 여섯 곳을 다 돌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겁니다. 미쉐린 국밥은 국밥이 맞는데, 제가 알던 그 국밥과는 결이 다릅니다. 세련되고 정갈해진 건 좋습니다. 그런데 돼지국밥이 원래 가진 친근함, 동네 어디서나 부담 없이 들어가서 뚝배기 앞에 앉을 수 있는 그 온도까지 함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서울에 가면 아남, 부산에 가면 안목이 미쉐린 국밥 입문으로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평소 먹던 진한 국밥이 그리우면 수변최고돼지국밥을 찾아가시길 권합니다.